저자와의 만남 / 인터뷰1

 

 

 

「7전8기의 은혜」의 신섭장로

 


“예수님 만나 새롭게 시작한 인생입니다”


‘돈’있어도 안되는 게 있더라

고진감래(苦盡甘來)도 호사다마(好事多魔)도 아니다. 사람이 살다보면 좋은 일도 생기고, 나쁜 일도 생기기 마련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사람들에게 간증거리를 주신다.

신섭 장로의 인생은 그래서 은혜 투성이라고 한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신섭 장로가 걸어 온 길을 보면, 인생역전이라고 하겠지만 그렇게 평가절하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성경에 있는 것을 현실화해서 당기는 것이 믿음입니다. 저는 예수 믿고 축복 받으면서 성경 속에 있는 것이, 하나도 믿어지지 않던 게 다 믿어졌습니다.”

일제 말기 충남 공주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검정 구두를 신고 학교를 다닐 만큼 귀하게 자란 그다. 성균관대학교 상과대학을 졸업했지만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교사자리를 마다하고 서울 종로 약국거리에서 자전거로 약 배달을 시작한다. 주머니 탈탈 털어 구입한 자전거 한 대로 약품 도매상을 시작한 그가 6년 만에 운수회사, 물류회사, 주유소, 정비소, 골재·건설업, 가스회사 등을 거느리는 기업총수가 되는데 이때까지는 열심히 하면, 그리고 ‘돈’만 있으면 안 되는 것이 없다는 믿음이 더욱 커지는 시기였다.

하지만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그렇게 힘겹게 일궜던 사업체는 순식간에 공중분해 되고 말았다. 자살을 경험하고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왔다는 신섭 장로는 인생의 정점에 서 봤고, 신념과 신뢰를 파는 것도 덧없고 헛되다고 강조한다.

“예수님을 만나 인생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브리태니커 사전, 20년 전 179만 원짜리를 하루에 30질 이상 팔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복음’을 먼저 전했기 때문입니다. 좋은 소식을 전하기 위해 만나자고 했을 때 만나지 않은 사람이 없었거든요. 그리고 저는 만나는 사람마다 전도부터 했습니다.”

부모노릇, 기도해야 제대로

다섯 식구가 똑바로 누워서 잘 수도 없는 지하 3층 단칸방에서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감사했다는 그. 물론 문전박대를 당하기도 했다. 브리태니커 사전의 진가를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됐겠는가. 하지만 그는 그 단칸방의 보증금까지 빼서 교회 건축헌금에 보탰고, 새벽 3시 반이면 일어나 목욕재개하고 지금까지도 새벽예배를 드린다.

“예수 믿고 기쁘지 않으면 가짜입니다. 사람 손에 일 억, 십 억이 쥐어져도 쥘 때만 기쁩니다. 아이들에게 기가 막힌 장난감을 줘도 조금 있으면 싫증내는 것과 똑같죠. 하지만 하나님을 믿는 기쁨은 콸콸 넘쳐나는 가쁨입니다. 죽을뻔 했는데, 죽지 않고 살아있는데 어떻게 감사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그의 감사생활은 목회자 대접은 물론이고, 꼼꼼한 헌금에서도 드러난다.
“말라기 3장에서 말씀하십니다. 온전한 십일조를 바치라고 말입니다. 사업이 잘 되고 싶으면 십일조를 바쳐야하는거죠. 십일조만큼 사업에 덜 투자한다고 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드리지 않아 황충이 먹는거죠.”

그러면서 다음과 같은 말도 덧붙인다.
“황충이 먹는 건 별거 아닙니다. 자신이 병들고 가난에 허덕이는 건 자신이 한 댓가를 받는다고 할 수 있는데 기한 전에 떨어지면 어떻게 할겁니까? 자식 죽는거, 다 크기도 전에 자식이 기한 전에 떨어진다면 그 죄를 부모는 가슴에 안고 살아야하는 겁니다.”

덕분에 미국에서 선교활동도 하는 한의사 아들도 있고 두 딸은 모스크바 대학에서 공부해 대통령의 통역을 맡으며 국위를 선양하기도 했다. 그는 날마다 부어주시는 은혜를 생각하며 다음 구절을 떠올린다.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시119:71)
고난을 피해가지 않고 당하고 겪으면서 깨달은 하나님의 사랑이 그의 칠십평생을 더 아름답게 만들었다. 기도가 뒷받침되었기 때문에 말이다. 

                                                                                       「7전8기의 은혜」(하늘기획)